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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대전 서구을 소개-둔산1동~3동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11-07-26 15:58     조회 : 1431    

둔산1동

http://www.seogu.go.kr/SeoguPortal/SeoguDong/SeoguDong09/index.aspx

둔지산 아래 자리했다 하여 유래된 이름

 

둔산동(屯山洞)은 백제(百濟)때 노사지현(奴斯只縣)에 속했었다. 신라(新羅)때는 비풍군(比豊郡)의 영현인 유성현(儒城縣)에 속했으며 고려(高麗)때는 공주부(公州府)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공주군에 속해서 천내면의 지역이었고 조선시대 말기 고종32년(1895)행정구역 변경 때 회덕군 천내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정항리(井項里), 행정리(杏亭里), 신대리(新垈里)와 서면(西面)의 정두리(井頭里)를 병합하여 둔산리(屯山里)라 하여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1월1일 대전시 구역확장에 따라 대전시에 편입되어 법정 둔산동이라 하였다. 그후 1971.7.1 서부출장소 관할 구역이였다가 1977.9.1 서부출장소와 중부출장소 통합으로 중구청 개청과 함께 중구에 속해 있다가 1983년에 대덕연구단지와 연결되는 대덕대로가 개설되고 1985.4.10자 건설부 고시 151호로 2,260천평의 관할면적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 되면서 개발사업이 전개되었다. 그후 다시 1988년1월에 서구청에 편입되어 90년11월30일까지 갈마동에 속한 법정동으로 있다가 91년12월1일 이후에는 삼천동에 속한 법정동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93년11월1일 마침내 행정동으로서 둔산동이 분동되고 1996년1월1일에는 다시 둔산1동,2동으로 분동이 되어 오늘에 이루고 있다.

 

옛 터전을 지키는 250년생 느티나무

샘머리공원에는 91년 봄에 옮겨 심은 250여년의 나이테를 지닌 느티나무 고목이 서 있는데 이를 둔산동 느티나무 혹은 둔산동 괴목이라 부른다. 나무잎이 고르게 피면 풍년이 들고 드믄드믄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 나무는 이곳으로부터 북서쪽으로 8백 미터 떨어진 아랫둔지미 어귀에 있던 것을 1982년 11월에 이미 시나무로 지정된 바 있었다.

 

나무 높이는 16m, 나무둘레는 4.2m에 이르러 신도시 개발과 함께 막대한 이전비용이 소요되므로 어려움을 겪던 중 당시 대전직할시장 이봉학이 토지개발공사와 협의하여 재원을 마련, 지원함으로써 무사히 이곳으로 옮겨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서 이 나무를 촌로들은 '이봉학이 나무'라고도 부르고 있다.

 

 

둔산2동

 

http://www.seogu.go.kr/SeoguPortal/SeoguDong/SeoguDong10/index.aspx

둔지산 아래 자리했다 하여 유래된 이름

 

둔산동(屯山洞)은 백제(百濟)때 노사지현(奴斯只縣)에 속했었다. 신라(新羅)때는 비풍군(比豊郡)의 영현인 유성현(儒城縣)에 속했으며 고려(高麗)때는 공주부(公州府)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공주군에 속해서 천내면의 지역이었고 조선시대 말기 고종32년(1895)행정구역 변경 때 회덕군 천내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정항리(井項里), 행정리(杏亭里), 신대리(新垈里)와 서면(西面)의 정두리(井頭里)를 병합하여 둔산리(屯山里)라 하여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1월1일 대전시 구역확장에 따라 대전시에 편입되어 법정 둔산동이라 하였다. 그후 1971.7.1 서부출장소 관할 구역이였다가 1977.9.1 서부출장소와 중부출장소 통합으로 중구청 개청과 함께 중구에 속해 있다가 1983년에 대덕연구단지와 연결되는 대덕대로가 개설되고 1985.4.10자 건설부 고시 151호로 2,260천평의 관할면적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 되면서 개발사업이 전개되었다. 그후 다시 1988년1월에 서구청에 편입되어 90년11월30일까지 갈마동에 속한 법정동으로 있다가 91년12월1일 이후에는 삼천동에 속한 법정동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93년11월1일 마침내 행정동으로서 둔산동이 분동되고 1996년1월1일에는 다시 둔산2동,2동으로 분동이 되어 오늘에 이루고 있다.

 

옛 터전을 지키는 250년생 느티나무

샘머리공원에는 91년 봄에 옮겨 심은 250여년의 나이테를 지닌 느티나무 고목이 서 있는데 이를 둔산동 느티나무 혹은 둔산동 괴목이라 부른다. 나무잎이 고르게 피면 풍년이 들고 드믄드믄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 나무는 이곳으로부터 북서쪽으로 8백 미터 떨어진 아랫둔지미 어귀에 있던 것을 1982년 11월에 이미 시나무로 지정된 바 있었다.

 

나무 높이는 16m, 나무둘레는 4.2m에 이르러 신도시 개발과 함께 막대한 이전비용이 소요되므로 어려움을 겪던 중 당시 대전직할시장 이봉학이 토지개발공사와 협의하여 재원을 마련, 지원함으로써 무사히 이곳으로 옮겨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서 이 나무를 촌로들은 '이봉학이 나무'라고도 부르고 있다.

 

둔산3동

http://www.seogu.go.kr/SeoguPortal/SeoguDong/SeoguDong08/index.aspx

옛날에는 한적한 전원의 운치가 진했던 마을이어라

 

둔산3동은 동쪽의 유등천 좌안도로인 버드내길에서 서쪽의 문정로 사이와 북쪽의 한밭대로에서 남쪽의 목련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갑천, 유등천, 대전천 등 3대하천이 합치는 곳에 있다고 하여 삼천리(三川里)라 불려왔던 둔산3동은 서구의 동북끝에 있는 동으로 동쪽은 대덕구 대화동, 오정동, 서북쪽은 서구 둔산동, 남쪽은 탄방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둔산3동은 백제때는 노사지현(奴斯只縣)에, 신라때는 비풍군(比豊郡)의 영현(領縣)인 유성현(儒城縣), 고려때는 공주부(公州府), 조선초기 태종13년(1413년)엔 회덕현(懷德縣),조선말기는 회덕현 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혁때 신촌, 갑천리, 상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천리라 하고 대전군 유천면에서 편입되었으며, 1963년 1월 1일 대전시의 구역확장에 따라 대전시에 편입, 법정 삼천동이 되어 1991년 12월 1일 용문동에서 분동되어 행정동 삼천동이 되었다.

이후, 삼천동은 법정동으로 둔산동과 탄방동 일부를 관할하다가 1993년 11월 1일 둔산동이 분동되면서 행정동이자 법정동인 삼천동으로 명명해 오다가 둔산동으로 동명칭 변경을 희망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의하여 2009년 1월 14일 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법정동 둔산동으로 동 명칭 변경 승인을 받아 2009년 4월 13일「대전광역시 서구 동의 명칭과 관할 구역에 관한 조례」제970호가 공포됨에 따라 2009년 5월 1일 법정동 둔산동, 행정동 둔산3동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참고로 둔산3동(구 삼천동)은 1985년 4월 정부의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고시된 둔산지구에 포함되어 본격적인 개발로 신도시가 조성되어 신흥아파트 밀집지역으로 변모하였지만 옛날에는 한적한 전원의 운치가 풍기는 농촌지역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