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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충청투데이 2006.07.14] 정치인과 헌법
  글쓴이 : 최고관리자     등록일 : 07-02-13 10:19     조회 : 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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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정치인과 헌법
박범계 변호사

2006년 07월 14일 (금) | PDF 19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일제 헌병 장교를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야반도주를 하여 중국으로 간 김구 선생은 그 성정 그대로의 독립운동을 해왔다. 38선을 베어안고 죽겠다던 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는 1948년 5·10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던 이승만의 정치적 승리를 가져왔고, 그를 중심으로 한 논의끝에 마침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대통령중심제를 골간으로 하는 제1공화국 헌법이 탄생하였다. 1948. 7. 17 의 일이었다. 이어 백범은 한 테러리스트의 총에 생을 마감하여야 했다.

제1공화국 헌법하에 벌어졌던 자유당 정부에 의한 발췌개헌(1952. 7.)과 사사오입 개헌(1954. 11.)은 이승만의 독재와 부패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1960년의 4·19 혁명은 이승만에 대한 반대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야당은 분열되어 있었고 단일의 리더십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윤보선과 장면 등의 야당 정치인은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민의원, 참의원)를 골간으로 하는 제2공화국 헌법을 탄생시켰다.(1960. 6. 15.) 의원내각제를 채택할 정도의 국민적 민도는 성숙되지 않았으나 정치인들의 권력 분점을 절묘하게 반영하는 개헌이었다.

제2공화국 헌법은 어쩌면 처음부터 숙명적인 마감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무질서와 분열 그리고 무능에 대한 답은 군대가 한강을 건너는 일을 정당화 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군인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박정희는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중심제를 부활시켰다.(1962. 12. 26. ) 제3공화국 헌법이었다. 그리고 수십만의 시민들이 운집했던 장충단 공원에서의 김대중의 열정에 찬 대통령 유세(1971년 4월의 제7대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박정희는 자신의 영구집권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직감하였다.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 대업'의 미명하에 헌정질서를 중단시키는 '유신조치'(1972. 10. 17)를 단행케하였다. 그리고 헌법은 있으나 민주주의는 실종된 제4공화국 헌법(유신헌법)의 등장(1972. 12. 27)을 국민들은 소리죽여 지켜보아야만 했다.

1980년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한 서울의 봄은 아지랑이가 되어 사라져갔다. 군부는 단련되어 있었으나 민주주의를 지켜줄 중산층의 시민은 성숙하지 못했다. 5. 17 전국 비상계엄확대조치를 통하여 명실상부한 권력자가 된 전두환은 7년 단임제의 간선에 의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을 탄생시켰다.(1980. 10. 27) 그나마 영구집권을 획책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1987년 여름의 전국 거리 곳곳은 각성된 시민들이 있었다. 대통령을 그들의 손으로 뽑고자하는 열망은 마침내 유신헌법이후 15년 만에 한국사회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시켰다. 1987년의 6·29 선언에 의한 제6공화국 헌법(1987. 10. 29)은 비록 양김의 분열로 인하여 잠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기도 하였으나 민주화의 오랜 상징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이라는 대통령들을 탄생시켰다. 이제 비로소 시민들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에서 그들의 자유가 신장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만끽하게 되었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체제에 관한 기본법으로 표현된다. 헌법은 사실인 동시에 규범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타협한 산물이 헌법이라면 이는 사실적인 측면의 헌법이다. 국민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기준과 질서를 제시하는 것이 헌법이라면 이는 규범적인 측면의 헌법이다. 규범은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사실은 쉽게 변화한다. 바로 헌법의 이러한 2중적인 속성 때문에 영구히 개정되지 않는 헌법이 없는 것처럼 너무도 쉽게 변화해서는 안되는 것이 헌법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헌법은 언제나 주요한 정치인의 궤적과 운명을 함께 하였다. 헌법은 오랜 기간 동안 독재자 한 사람만을 위한 장식품에 불과하였다. 헌법이 국민의 품에 돌아온 역사는 이제 18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이 없는 지금,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는 특정한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대통령 중임제의 도입, 정부통령제의 도입, 의원내각제에 관한 논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기본권의 강화, 통일 한국 혹은 북한과의 평화체제를 전제로 하는 통일조항 등이 논의되는 개헌에 관한 주요한 쟁점들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정치인을 위한 개헌 논의, 정개개편을 위한 개헌논의가 되어서는 아니 됨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제6공화국 헌법처럼, 온 국민적 열망과 함께하는 논의가 되어야 하고, 내용적으로는 국민을 통합하고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며 민족의 생존과 통일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